놓다
네가 컵을 내려놓았다.
유리에는 손가락 몇 개가
흐리게 남아 있었다.
물을 다 마신 뒤에도
손은 한동안 쥐던 모양을 기억한다.
놓음으로 의미는 숨을 거둔다.
쥐었던 손은 오래
빈 것을 쥔 모양으로 남는다.
버스 손잡이를 오래 잡았다.
내릴 곳을 지나칠 뻔해
급히 손을 폈다.
손바닥 한가운데 붉은 선 하나.
자국은 대개 놓은 뒤에 보였다.
현관에는 네 우산이 있었다.
손잡이에 묶인 머리끈을 풀었더니
우산 하나, 고무줄 하나.
풀린 뒤에는
어느 쪽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야.
메시지 창에 네 이름을 적었다.
그 아래는 비워두었다.
휴대전화가 어두워져도
나는 한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남아 있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달랐다.
그래, 내가 못 알아들었나 보다.
새벽에는 비가 왔다.
운동화 한 짝만 젖었다.
다른 한 짝은 처마 아래
아무 일 없이 말라 있었다.
물은 그 차이를 모른 채
오래 흘렀다.
아침에
왼손에 하나, 오른손에 하나.
손을 모으면 한 켤레 같았고
젖은 것은 볕에,
마른 것은 현관에 놓았다.
그래, 우습긴 하네.
손을 편다.
한 켤레만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