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보다
너는 좀처럼 금이 가지 않았고
나는 자꾸 손톱을 길렀습니다.
내가 없으면 부족해져줘.
너는 내 쪽으로 기울던 몸을 바로 세웠다.
그날부터 우리는
같은 거리를 다르게 걸었다.
제발 이 촌극의 선악에 의문을 갖지마.
끝내 버리지 못할 선량함을
나를 위해서만 기꺼이 배반해주었으면 했다.
공평한 너에게 편애를 바라는 일이
내가 품은 가장 깨끗한 악의였습니다.
나는 네게
원인 없는 결손이 되고 싶었다.
새살이 다 오른 뒤에도
궂은 날이면 먼저 욱신거리는 것.
다 나았다고 말하는 네 입을 믿지 않고
환부의 진술을 끝까지 믿는 사람.
망각이 너를 구할 때마다
시간은 끝까지 나를 증언했으면 해.
우주의 질서는
우리 때문에 오산하지 않을 테지요.
소실된 만큼만
공백을 허락하는 질서.
나는 그 정밀함을 오래 미워했다.
네게서 내가 빠지는 날에는
부재보다 더 많은 것이
함께 사라지기를.
나 하나를 잃은 네가
자꾸 다른 것들의 안부까지 확인하기를.
안녕은 기어이
너를 제자리까지 데려다 놓겠지.
내가 없으면 부족해져줘.
본래 네 것이었던 평온까지
나는 넘보았네.
네가 온전해지는 일마다
나는 조금씩 없어지겠지.
그러니 아주 좋은 날의 끝에서
무엇 하나 놓고 온 사람처럼
잠깐만 뒤를 돌아봐 주세요.
끝내 무엇이 모자란지는
알아내지 못한 채로.